- 문화 코드로 해석하는 영화 리뷰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K-콘텐츠’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지 영화적인 완성도나 서사 구조 때문에 주목 받은 것 만은 아니다. 외국인 관객들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문화 코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계단’이다.
계단은 왜 그렇게 자주 등장했을까?
《기생충》을 본 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기택 가족이 부잣집 박사장네에서 파티가 열리는 날, 폭우가 쏟아지는 밤 어두운 길을 따라 끝도 없이 내려가는 계단을 걷는 장면을. 이 장면은 단순한 귀가길 묘사가 아니다. 공간 이동을 통한 계층 하강의 시각적 표현이다.
많은 해외 평론가들은 이 장면을 "사회적 추락의 상징"으로 분석했다. 특히 뉴욕 타임즈,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이 계단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축”이라 평가했다. 반지하 집으로 내려갈수록 물에 잠기는 가족의 현실은, 더 이상 은유가 아닌 현실 그 자체였다.
한국 관객은 ‘익숙함’을, 외국 관객은 ‘충격’을 느꼈다
한국 관객에게는 계단과 반지하라는 공간이 어쩌면 낯설지 않다. 서울의 빽빽한 언덕길, 오래된 주택가의 구조, 그리고 반지하에 대한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외국 관객에게는 그게 달랐다.
예를 들어 북유럽, 북미, 호주 등지에서는 주거 공간이 지면보다 아래에 있는 것 자체가 드물고, 그것이 가난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것에 놀라움을 보였다.
해외 유튜브 리뷰에서는 “Why do they live underground?”, “Is basement housing really common in Korea?” 같은 질문이 다수 등장했다.
또한 Reddit, IMDb 등 글로벌 커뮤니티에서도 “계단이 하강의 상징으로 반복되는 구조가 탁월하다”, “단순한 미장센이 아닌 사회적 내러티브로 읽혀진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계단 위와 아래 – 물리적 위치가 곧 계급?
흥미로운 건, 《기생충》은 집의 구조 자체에 이 계급 차이를 녹여냈다는 점이다.
박사장네 집은 높은 언덕 위의 단독 주택, 넓은 잔디 마당과 대형 창으로 빛이 가득 들어온다. 반면 기택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은 햇빛이 잘 들지 않고, 화장실이 천장 바로 아래에 있는 구조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건 항상 ‘계단’이다. 올라가야 하는 자와, 내려가야 하는 자.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가 "이 집을 사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은, 계단을 다시 올라가겠다는 상상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잔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나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계획이 없으면 실패할 일도 없지.”
한국의 ‘수직 사회’는 글로벌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 기생충》의 계단은 단지 한국 사회만을 비추는 게 아니다.
미국의 게토, 인도의 슬럼, 브라질의 파벨라 등 전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계급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했기에, 전 세계 관객은 충격과 공감을 동시에 느꼈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계단’이라는 시각적 장치를 통해 빈부 격차, 계층 이동의 어려움,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 마무리하며: 우리가 놓쳤던 디테일, 세계는 눈여겨봤다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도, 세계인의 눈에는 새로운 상징으로 보일 수 있다.
《기생충》은 그런 문화 코드의 정교한 조합으로, 단순한 ‘한국 영화’를 넘어 보편적인 사회학적 메시지를 전하는 예술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다시 《기생충》을 본다면, 그 계단을 눈여겨보시길 바란다.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우리 사회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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